제주가 좋은 이유는 풍경에 버금가는 맛집들 때문일 터. 내가 사랑하는 해산물도 풍부하고 또 안 먹으면 서운한 고기도 너무너무 훌륭하니까 말이다. 이번에 우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머물게 된 성산항 인근 지역에도 한 집 건너 한 집이 모두 맛집인 데다가 실제로도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제주 동부 지역을 여행하거나 성산일출봉 방문 일정이 있다면 백기해녀의 집에서 신선한 해산물과 기가 막힌 경치도 함께 먹고, 고소한 흑돼지 오겹살을 멜조림에 굴려서 즐길 수 있는 커큐민 흑돼지집을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이게 바로 제주다! 백기해녀의 집
제주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가게들이 '해녀의 집' 아닐까? 백기해녀의 집은 내가 묵은 호랑호랑 펜션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었서, 이른 아침에 해녀 분들이 바다로 나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해녀 콘셉트가 아닌 찐 해녀들의 식당이었던 거다. 숙소에서 보면 건물 뒤편이 보여서 별로 당기는 않는 모습이었는데(알고 보니 그 건물은 식당이 아니고 해녀들의 작업공간? 같은 곳이었다), 실제로 찾아가 보니 풍경이 기가 막힌 곳이었다.
'캬! 나 이거 보려고 제주 왔네!'
마치 드라마 세트장 같이 모든 것이 주변 자연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바닷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야외 좌석도 너무 멋졌고, 가게 내부의 풍경도 정겹다. 비가 와서 야외에서 먹지 못해 아쉬웠지만 충분히 바닷가 정취를 느낄 수 있고, 음식에도 부족함이 없어서 이번 4박 5일 간의 제주 여행에서 베스트 식당으로 꼽고 싶다.
브런치 마냥 이른 점심시간에 들렀는데 메뉴를 고를 때 상당한 고통이 따랐다. 먹어보고 싶은 메뉴가 수두룩한데, 사람이 둘 뿐이라 최상의 선택을 해야 하고, 술을 부르는 곳인데 이전에 먹은 술로 이번에는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전복죽을 골랐고, 나는 애정하는 소라숙회를 골랐다. 원래 제주 뿔소라는 씁쓸한 맛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운이 좋았던지 할머니들의 비법이 있었던지 쓴맛 없이 비린맛 없이 달달하고 적당히 쫄깃하게 완벽한 소라 숙회를 맛보았다.
기름장이 있었으면 더 소라맛이 좋았을 것 같은데, 괜한 요청 같아 그냥 초장에 찍어 먹었는데.. 앗! 뒤늦게 오신 손님들이 기름장을 요청하자 너무 쿨하게 장을 내주셨던 할망! 아뿔싸! 나도 기름장 달라고 할걸 ㅋㅋㅋㅋ
온기가 가득한 소라 숙회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곧 전복죽이 나왔다. 전복죽 조리 시간이 더 길다는 건 죽을 지금 만드신 거다. 보통은 슬라이스 전복을 죽 위에 토핑 처럼 꾸미는 게 일반적인데, 전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전복 있는 척 안 하겠다는 거지! ㅋㅋㅋ 휘저어 보니 몇 개 걸리긴 하는데, 전복이 많은 전복죽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맛있어! 이상하게 맛있어! 소라 숙회가 한 접시 그득하게 있으니 전복이 적은 죽을 먹어도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하지만, 숟갈마다 전복이 가득한 죽을 기대하고 있다면 실망할 수 있다. 대신 전복죽 가격이 12,000원이니 가격 대비로는 괜찮지 않나 싶다.
자꾸 생각나는 감칠맛, 커큐민 흑돼지 오겹살
제주에 5일 동안 머물면서 돼지 고기는 3번 먹었다. 나름 괜찮은 식당들 다 찾아간 거지만, 다시 한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은 이곳, 커큐민 흑돼지 집이었다.
원래 계획은 친구가 맛집으로 알아둔 '성산 또리장군 고깃집'이었었다. 고기와 문어가 나오는 곳이라고 해서 나도 잔뜩 기대를 하고 방문했는데, 단체 손님 예약이 있어서 우리 자리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헉! 이럴 수가! 그래서 가게 된 곳이 바로 인근에 있는 커큐민 흑돼지 집이었다.
건물 모습만 보면 단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 같아서 좀 꺼려졌는데, 딱히 저녁 시간에 대안도 없고 해서 그냥 방문했더랬다.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즐비하고 내부에서 왁자지껄 했는데, 단체 손님이 마무리되니 곧 자리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거의 체념? 그냥 돼지가 다 돼지지 하는 마음으로 한 끼 먹고 가지 뭐, 이런 느낌이었다.
단체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큰 식당이 조금 정리되는 분위기가 되었고, 우린 많이 기다리지 않고 곧 자리를 안내받았다. 가운데 숯불이 있고, 기본 반찬이 세팅된 모습에 마음이 조금 설렌다.
빈자리는 곧 나올 멜조림의 자리! 지금은 흔해졌지만 예전에는 멜젓에 고기를 찍어먹는 제주도의 이 방식이 정말 독특하고 맛있는 포인트였는데, 최근에는 그냥 젓갈이 아닌 멜조림이 유행하고 있는 듯하다. 이 집 멜조림은 그닥 꼬리꼬리한 맛은 없고 적당히 짭짤한 정도? 친구는 멜조림에 찍어먹는 맛이 너무 좋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조금 특색 없는? 느낌이었지만 누구나 시도하기 좋은 맛일 것 같긴 하다.
멜조림이나 기본 반찬들은 무난 무난한 편인데, 내가 진짜 반한 건 고기 맛이다. 난 돼지 비계를 아주 싫어하는데 왜 제주 오겹살은 그렇게 맛이 있을까? 미스터리~ 살과 비계의 비율이 환상적이고 느끼한 맛은 1도 없다. 강황 성분인 것 같은 커큐민을 발라서 숙성 과정을 거친 것이 이 집 고기의 특색인데, 이것이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반한 것은 맛! 씹고 있어도 더 씹고 싶고, 더 먹고 싶고, 집에 와도 또 먹고 싶은 감칠맛이다. 아놔~ 5일 동안 일정에서 이 집을 늦게 오는 바람에 한 번밖에 못 갔네 ㅋㅋ
중국인 커플 손님들이 많아 특이했는데, 번역기로 주문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 집에서 먹었으면 분명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커큐민 흑돼지는 외관만 보면 너무 크고, 단체 관광객들을 위주로 상대하는 식당일 것 같아 꺼려지는데 실제로 그런 식당이긴 하지만 맛으로는 찐이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 식당에서 만족하고 나면 만족이 더 배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이번 제주 여행은 참 맛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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